통참노트/운동·건강

스포츠에서의 내추럴리즘(Naturalism)

통참 2021. 6. 9. 23:39

SKINNERS

과거 크라우드 펀딩 웹사이트인 인디고고(https://www.indiegogo.com)에서 흥미로운 캠페인이 진행된 적이 있습니다.

캠페인의 이름은 SKINNERS: Revolutionary Ultraportable Footwear로 The ultimate pocket footwear for all your adventures. Minimalist. Anti-odor. Durable. Awesome.이라는 부제를 달고 론칭되었습니다. 캠페인을 통해 판매하고 있는 SKINNERS라는 제품은 미니멀리즘과 내추럴 러닝을 지향하는 사람들을 위한 풋 웨어(Footwear)입니다.


SKINNERS는 항균 소취, 부분 방수 기능과 함께 뛰어난 휴대성과 내구성을 강점으로 내세웠습니다. 외견상으로는 양말의 휴대성과 신발의 내구성이라는 장점을 적절하게 취합한 것처럼 보입니다. 

 

맨발, 또는 양말과 신발의 경계를 허물기 위한 작업은 SKINNERS 이전에도 시도된 적이 있습니다.

 

VIBRAM



가장 대표적인 기업은 바로 Vibram입니다. 1937년부터 신발과 인솔, 아웃솔 등의 제품을 제조하다가 2004년 비브람 파이브 핑거스(Vibram Fivefingers)라는 제품군을 출시하면서 본격적으로 내추럴 풋 웨어 카테고리에 도전장을 내밀었습니다. 비브람의 파이브 핑거스 제품군은  아웃도어, 수상스포츠, 트레이닝과 피트니스, 러닝, 일상화, 골프 등의 스포츠를 위해 정교하게 설계되었으며 특히 내추럴 러너들과 파이브 핑거스 매니아들 사이에서 아직까지도 인기를 끌고 있습니다. 다만 요즘은 완제품을 만들기보다 아웃솔 판매에 주력하는 듯합니다.


인간 본래의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찾아내고 계발함으로써 인간이 가진 잠재력을 최고조로 이끌어내자는 기치는 스포츠 분야를 막론하고 수십 년 전부터 호응을 얻고 있습니다.

예컨대 러닝에서는 미니멀리스트, 또는 내추럴 러닝이라는 슬로건이 등장하며 신발 없이 산악의 비탈길을 맨발로 달리는 아프리카 원시 부족의 주법이 과학자들과 러너들의 조명을 받게 되었습니다. 러닝에서 하나의 패러다임으로 간주되었던 힐 스트라이크 대신 전족부, 또는 중족부로 착지하는 포어풋과 미드풋 스트라이크 주법이 러닝의 효율성을 높일 수 있고 나아가 인간 본래의 움직임을 찾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는 주장이 러너들의 관심을 받게 되었고 내추럴 러닝과 관련된 제품들이 잇달아 출시되었으며 내추럴 러닝 관련 시장은 빠르게 성장했습니다. 상기한 비브람 사의 제품들을 비롯하여 써코니(Saucony), 푸마, 브룩스(Brooks), 아식스 등의 브랜드가 내추럴 러닝의 트렌드에 보조를 맞추었으며 나이키와 아디다스와 같은 유수의 기업들도 내추럴 러닝의 콘셉트에 맞는 운동화나 러닝화를 출시하고 있습니다.

내추럴(Natural)의 기치는 체육관의 풍경도 바꾸어놓았습니다. 코어근육을 인지하거나 코어 근육을 발달시킴으로써 인간의 운동 능력을 획기적으로 제고할 수 있다는 마법 같은 이야기들은 짐내스틱스(Gymnastics)와 내추럴 무브먼트(Natural Movement) 열풍을 불러일으켰습니다. 체육관과 헬스장에서는 협응력을 발달시키는 데  효과가 있는 프리 웨이트 운동은 물론 근육뿐만 아니라 근육을 둘러싸고 있는 조직, 예컨대 건과 인대 따위를 함께 발달시킴으로써 전반적인 운동 능력을 향상할 수 있다고 선전하는 맨몸 운동(Calisthenics)이 올드 스쿨 헬스 기구들의 자리를 빠르게 대체하게 되었습니다. 엘리트 체육을 제외한다면 짐내스틱스의 불모지였던 대한민국에서도 역도를 가르치고 기능적 움직임을 가르치는 체육관이 우후죽순 생겨나고 있으며 건강 관련 서적에서는 이름도 생소한 요근, 골반기저근, 척추기립근, 복직근, 둔근 등의 코어 근육을 위시한 기능적 움직임의 인지와 계발이 지면의 지분을 넓혀가고 있습니다. 요컨대 스포츠에서의 내추럴리즘(Naturalism)의 기치는 단기간에 헬스 비즈니스의 풍경을 괄목할 만큼 바꾸어놓았습니다.

스포츠에서의 내추럴리즘은 보다 실용적이고 단순한 경우가 많습니다. 예를 들어 앞서 언급한 내추럴 러닝을 위해 힐토드랍(hill-toe drop)이 낮은 러닝화를 신고 달리는 행위, 무거운 물건을 들어 올리거나 옮기는 동작을 모방한 스내치와 클린, 파머스 워크 따위와 운동과 유아의 움직임을 모방한 크로울링 운동은 모두 인간의 몸에 각인된 보다 자연스러운 움직임을 이끌어내고 인간의 몸이 가지고 있는 잠재력을 이끌어내기 위한 스포츠 내추럴리즘의 일환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만, 스포츠 내추럴리즘을 만능으로 여기는 풍조는 경계할 필요가 있습니다. 정보를 충분히 습득하지 않은 채 내추럴리즘을 만병통치약으로 여기다가 화를 입는 경우도 있습니다. 예컨대 종아리 근육이 충분히 이완되어 있지 않거나 아킬레스건의 손상 경험이 있는 사람이 정확하지 않은 자세로 미드풋 스트라이크를 시도하게 되면 아킬레스건에 손상을 입을 수 있습니다. 또한 고관절의 가동 범위가 좁고 대퇴부가 충분히 유연하지 않은 사람이 어설프게 역도 동작을 시도하다가 근육과 관절을 다칠 수도 있습니다. 칭찬일변도의 감언이설에 현혹되기보다는 자신의 몸을 먼저 알고 내추럴리즘 워크아웃이 자신의 몸에 어떠한 영향을 줄 수 있는지를 비판적으로 파악한 연후에 운동을 시작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할 수 있겠습니다. 


  내추럴리즘의 기저에는 재미있는 진화론적 관점이 자리하고 있는데 이를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생물 진화의 주기는 학자들마다 바라보는 입장에 조금씩 차이가 있는데, 진화가 대체적으로 시간에 따라 점진적으로 이루어진다고 보는 입장이 있고 특정한 시기에 생물의 폭발적인 진화가 이루어짐으로써 진화의 그래프가 계단의 모양을 띤다고 주장하는 입장이 있습니다. 물론 학계는 어느 한 이론에 치우치기보다는, 다시 말해 모든 종의 진화 양상을 동일한 모델로 일반화하려는 시도는 지양하고 전술한 두 가지 이론을 절충한 모델을 생물종에 따라 다르게 사용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런데 단기간에 생물 형질에 급격한 변화가 이루어진 후 진화적 안정기를 갖게 된다고 가정하는 단속 평형설의 경우에도 진화의 단위가 되는 시간의 단위를 짧게는 수 천년으로 전제합니다. 이는 진화가 매 순간 이루어지고 있는 것임에도 불구하고 단지 몇 세대를 거친다고 해서 가시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는 진화의 역설적인 비가시성을 시사합니다.

그렇다면 전술한 진화의 주기가 인간에게 시사하는 바는 무엇일까요? 인간 문명의 역사는 불과 수천 년에 지나지 않습니다. 불과 수천 년에 지나지 않는 문명의 역사는 가시적인 진화의 시간이 되기에는 지나치게 짧습니다. 인간의 생활 양식에 지대한 변화를 가져온 산업혁명은 18세기 중엽에 시작되었습니다. 산업혁명 이후의 사람들의 생활양식은 이전의 존재했던 무엇과도 다른 양상을 띠게 되었습니다. 앞서 말한 부자연스러운 보행 습관부터 좌식 생활, 과도한 영양섭취, 만성적인 운동부족은 현대인들의 꼬리표가 되었고 각종 성인병과 대사증후군, 비만, 신체 및 운동능력 저하는 현대인들의 병리적인 특성을 단적으로 나타내는 단어들이 되었습니다. 

 

시간은 흘러 인간을 둘러싼 환경은 진화의 시간을 뛰어넘어 첨단을 달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신체는 문명의 발달 속도를 따라잡지 못하고 과거에 머물러 있습니다. 고급 레스토랑에서 나이프와 포크로 식사를 하고 엄지와 검지를 사용해 스마트폰을 이용하기는 하지만 인간의 신체는 여전히 사바나 초원에서 영양을 쫓고 열매를 채집하던 수만 년 전의 환경에 적응해있는 셈입니다. 내추럴리즘은 이렇게 현대 문명 속에서 휴면기에 머물러 있는 인간의 육체를 깨우고 유전자에 각인된 인간의 잠재력을 끌어내어 계발하고자 하는 움직임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내추럴리즘이 모든 상황에서 옳은 것은 아닙니다. 신체 수준을 높이고 운동 능력을 향상하기 위한 효율적이고 효과적인 접근법은 비단 내추럴리즘이 아니더라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내추럴리즘의 기치는 인간 본연의 움직임을 되찾고 육체가 발휘할 수 있는 최고의 잠재력을 자각하고 이끌어낼 수 있도록 하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 몸이 보내는 신호에 귀 기울이고 몸이 최적의 상태로 기능할 수 있도록 준비하는 것이 바로 내추럴리즘의 지향점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