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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참노트/인문·철학

『소크라테스의 변명』, 『크리톤』 - 플라톤(Plato)

by 통참 2021. 6. 3.
소크라테스의 죽음(The Death of Socrates) -Jacques-Louis David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에는 소크라테스의 신념과 원칙, 그리고 소크라테스가 삶과 죽음을 대하는 방식이 드러납니다.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자신의 존재를 극한까지 밀어붙이는데, 그것은 종래에는 죽음도 불사하는 모습으로 묘사됩니다. 그렇다면 작품 속의 소크라테스는 악법도 법이라고 말하며, 숙명을 받아들이고 자살한 것일까요?

1. 악법도 법이다.



소크라테스가 악법이라 칭하면서도 그 정당성을 인정하고 따르고 있는 법이란 과연 무엇일까요? 이때의 은 개인이 속한 사회에서 사회 구성원끼리 공공연하게 합의한 내용으로 일정한 강제력을 가지고 집행되는 규칙입니다. 그러므로 악법도 법이다라는 명제에서 악법을 단순히 나쁜 법이나 부당한 법으로 해석하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대신 나쁜 법은 특정 계층의 이익을 대변하거나, 정당하지 못한 방법과 수단을 통해 제정되어 다수가 아닌 일부를 위해 남용될 수 있는 여지가 있는 법이라고 해석할 수 있습니다. 요컨대 다수의 합의를 통해 정통성과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한 법은 법으로서의 자격을 확보할 수 없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 소크라테스는 ‘30인 참주 체제하에서 오히려 불이익을 불사하고 법을 위반하는데, 이는 당대의 법체계가 사회적 합의를 전제로 한 정당성을 확보하지 못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에서 일견 상반되는 것으로 보이는 그의 태도는 법체계의 정당성과 정통성의 유무 측면에서 볼 때 오히려 일관성을 지니는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저는 악법민주주의의 맹점혹은 민주주의의 결점으로 해석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행정적인 절차에 따라 재판에 회부되었고, 재판 결과에 따라 사형에 처해졌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이미 사회 성원에 의해 합의된 내용과 절차에 따라 사형을 선고받게 된 것입니다. 실제로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거시적인 차원에서 정당성을 내포하는 사회 제도에 의한 무고한 사회 구성원의 피해로 이해한다면 악법이라는 주제어를 민주주의의 맹점으로 파악하고 논지를 전개하는 데 무리가 없습니다. 요컨대, 정당성을 지닌 합법적인 절차에 의해서도 일견 비합리적인 것처럼 보이는 결과가 도출될 수도 있다는 것이 민주주의가 태생적으로 내재한 맹점인 것이지요.

민주주의의 맹점은 소크라테스와 크리톤의 대화에서 잘 드러납니다. 두 인물이 나누는 대화에서는 다수전문 지식을 가진 사람의 대비되는 두 개의 개념을 포착할 수 있습니다. 크리톤은 소크라테스와의 대화에서 다수의 사람들이 행사할 수 있는 부정적인 영향력에 대해 언급합니다. 크리톤에 의하면 다수는 개인을 부정적인 방향으로 이끌 수 있는 잠재적인 위험성을 가진 존재입니다. 하지만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가장 큰 해를 줄 수 있는 사람은 동시에 가장 큰 이로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이기도 합니다. 특정한 분야에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자신의 분야에서 좋은 것좋지 않은 것을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며, 전문적인 지식을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들의 의사결정에 도움이 되는 유용한 정보를 제공할 수 있습니다. 반면 무지한 다수는 특정 분야에 대한 판단을 내리는데 있어 충분히 합리적이지 못합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판단은 합리성의 측면에서는 전문가들의 결정에 비해 뛰어나지 못합니다. 이를 두고 소크라테스는 의사결정 과정에서 더 나은 결과를 도출하기 위해서는 그 분야의 전문가, 다시 말해 특정 분야에서 분별력 있고 능력이 출중한 사람들의 현명한 판단에 따라야 한다고 말합니다. (크리톤47c) 그래야 진정으로 이로운 것이 무엇인지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크리톤소크라테스의 변명의 다른 대화들을 통해 소크라테스가 다수의 민중을 그저 어리석은 존재로만 보고 있지는 않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가 민중에 의한 의사결정 방식을 불신하고 민중의 판단 능력을 신뢰하지 않았다면 민주정체 아래에서 평생을 살지도 않았을 것이고 민주주의를 기반으로 한 실정법에 순응하지도 않았을 것입니다. 전술한 것처럼 소크라테스가 전문가의 존재와 기능에 대해 긍정적인 평가를 내린 것은 사실이지만, 이와 동시에 소크라테스는 전문가들이 부정적인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다는 사실 또한 인지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소크라테스는 소수의 전문가들에 의해 국가와 여타 삶의 영역이 지배당하고 관리되는 사회, 다수의 민중이 소수의 영향력에 복종하는 사회나 국가는 위험할 수 있다는 의견을 피력하기도 합니다. 그런 사회에서 소수의 전문가들은 다수에게 가장 큰 해를 끼칠 수 있는 지식과 지위를 가지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오로지 민중에 의해 운영되는 국가가 최선의 정체라고 말할 수는 없지만 소수의 전문가들이 이끄는 국가 또한 민주정체의 역기능을 극복할 수 있는 최선의 대안이 될 수는 없습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악법도 법이라는 견해를 수용하는 태도를 보이고 죽음을 받아들인 배경은 무엇일까요? 이 문제에 대한 해답은 크리톤에 드러난 소크라테스의 발언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그 배경은 합의에 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사람 사이에서 이루어지는 합의를 통해 정의와 부정의를 분별할 수 있다고 역설합니다. (크리톤48b) 소크라테스의 발언은 인간들이 정의와 부정의에 대해 합의할 수 있는 존재라는 것을 전제합니다. 또한 소크라테스는 다른 누군가와 합의한 것이 정의롭다면 그는 그것들을 이행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크리톤49e) 말하자면 소크라테스에게 있어 인간은 함께 모여 정의로운 것을 숙고하거나 합의하고, 그 내용을 기준으로 행동할 수 있는 존재인 것입니다. 그리고 상기한 인간 군상이 모여 정의, 부정의를 논의할 수 있는 기반이 마련된 사회가 바로 민주정체입니다.

그렇다면 소크라테스가 말하는 전문가민중의 합의라는 개념은 어떻게 조화될 수 있을까요. 상기한 바와 같이 민중은 정의와 부정의를 논할 수 있는 존재입니다. 그리고 정의와 부정의에 대한 합의의 전제가 되는 것은 인간이 가진 이성적 사고 능력입니다. 그러나 민중 모두가 이성적인 사고 능력을 가지고 있다고 해서 전문적인 지식에 근거한 판단을 내릴 것이라고 기대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다수의 민중은 이롭고 해로운 것에 대한 합리적인 분별이 명확하지 않기 때문에 다수의 민중에게 절대적인 결정권을 부여하는 것도 무리가 있습니다. 그렇다면 다수의 이성적인 사고 능력이 전문성과 합리성을 갖출 수 있게 만들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요? 바로 전문가들입니다. 전문가들은 다수의 민중에게 이롭고 해로운 것에 대한 전문적인 견해를 제시할 수 있고 민중들은 전문가들의 견해를 비교하고 분석할 수 있는 이성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요컨대, 사람들의 이성적인 의사결정 능력과 전문가들의 견해가 합쳐져 최선의 대안을 도출할 수 있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이와 같은 이상적인 의사결정 과정에는 현실적인 어려움이 따릅니다. 의사결정을 위해 많은 시간이 소모되고 많은 비용이 투입되어야 하며 악의를 가진 전문가의 개인적인 이해관계가 반영될 여지가 있습니다. 소크라테스 재판의 경우도 이러한 한계를 잘 드러내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소크라테스는 민중의 이성적인 의사결정 능력을 신뢰합니다. 하지만 피고에 대해 악의를 가진 소수의 전문가들의 견해에 휩쓸려 다수의 민중은 불합리한 대안을 도출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재판 과정은 또한 정당하게 합의된 법과 제도에 근거한 것이기도 합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의 변론은 악법이 법으로 작용할 수 있음을 가장 극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사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작품 속 민주적인 정치제도와 법은 때로는 비합리적인 대안으로 귀결되거나 악법으로 작용될 가능성을 여전히 내재하고 있지만, 동시에 소수에게 권력이 집중되는 것을 방지하며 다수의 민중들이 각자의 이성적 의사결정 능력을 최고도로 발휘할 수 있는 터전을 마련할 수 있다는 점에서 양면적인 특성을 지닙니다.

2. 숙명을 받아들이는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



그렇다면 마지막 순간까지 자신의 신념을 저버리지 않았던 소크라테스의 삶은 어떤 의미를 지니는 것일까요.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은 역설적으로 그가 죽음을 기다리는 순간에 가장 잘 드러납니다. 그는 다수에 의해 폭력적으로 부여된 죽음을 숙명으로 받아들입니다. 숙명이란 한 인물에게 주어진 피할 수 없는 운명으로, 인물이 자신의 능력과 의지와는 무관하게 맞닥뜨리게 되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에서 소크라테스는 자신이 추구해온 가치와 신념을 수호하기 위해 죽음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의 삶의 방식은 자신의 숙명을 받아들이고 신념과 가치를 수호하기 위해 죽음을 택하는 모습에서 드러납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크리톤, 두 작품에서 나타나는 소크라테스는 이성에 근거한 냉철한 사고를 하는 인물이며, 자신이 옳다고 생각한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다시 말해, 그는 자신의 신념과 가치, 그리고 신념과 가치에 근거를 둔 행동 원칙을 수호하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로 그려집니다. 수적 강세에 무조건적으로 굴복하지도 않습니다. (크리톤46b-46c) 다만 그는 지혜, 또는 지혜를 가진 자만을 존중하고 두려워합니다. (크리톤44c) 비록 다수의 민중에 의해 불합리한 죽음을 맞이하게 됐지만 마지막 순간까지 소크라테스는 자신의 삶을 가치가 있는 삶, 그리고 행복한 삶이라고 느꼈습니다. (크리톤43b) 그가 어떠한 삶을 가치 있다고 느끼며 살아왔는지는 다음 구절에서 단적으로 나타납니다.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을 가장 중시해야 한다는 것이 여전히 우리에게 유효한지 아닌지를 고찰해 보게. “
-<크리톤> 48b, 소크라테스가 크리톤에게 던진 질문 -



이처럼 소크라테스는 단지 사는 것이 아니라, ‘훌륭하게 사는 것을 중시했습니다. 때문에, 자신이 추구한 바가 자신을 죽음으로 내몬다고 해도 그는 자신의 신념을 수호할 것임을 역설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에서 알 수 있듯이 소크라테스는 깨달은 바를 개인적 차원에만 머무르게 하지 않고 젊은이들에게도 알리려고 노력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변명19c) 그는 자신의 영혼뿐만 아니라 타인의 영혼이 훌륭해질 수 있게 도와주는 것 역시 자신의 일이라고 믿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사람들의 영혼을 가꾸기 위한 그의 노력은 빛을 발하지 못 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결국 그에 반(反) 하는 세력들의 미움을 사서 죽음에 이르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소크라테스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견지하고 있는 사람들은 그가 궁극적으로 자신의 신념과 가치가 널리 퍼져나가기를 바랐다면 죽음에 처한 상황을 모면하고 살아남아 보다 적극적으로 당대 사회에 맞섰어야 할 것이다라는 비판을 제기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전술했듯이 소크라테스는 가치와 신념을 지키기 위해 죽음도 불사할 정도로 철저한 행동 원칙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가 죽음을 모면하기 위해 탈옥을 감행한다면 이는 정당하게 합의된 사회적 합의의 결과에 대한 중대한 위반이며, 소크라테스에 따르면 이는 행동 원칙에 어긋나는 동시에 정의롭지 못한행동이 됩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가 사형 집행을 받아들인 것은 소크라테스의 삶의 방식에 비추어보아 소크라테스가 내린 능동적인 결단인 동시에 필연적인 귀결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3. 자살을 선택하는 소크라테스 죽음의 방식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일차적으로 다수의 표결에 의한 사형 판결의 결과를 소크라테스가 담대히 수용하는 모습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작품 안에서 직접적으로 묘사되지는 않지만, 소크라테스의 신분과 소크라테스가 처해있는 상황을 고려할 때 그가 사형 집행인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것이라는 사실은 문맥상 합리적으로 예측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만약 이처럼 작품 속에 드러나는 사건들 사이의 가시적인 인과관계를 고려한다면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일견 표결에 참가한 대중들이나 사형 집행인이 주체가 되어 일으킨 타살처럼 보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소크라테스의 죽음 방식을 타인에 의해 부여된 죽음으로 보기에는 다소 무리가 있습니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습니다.

소크라테스는 본인의 죽음에 대해 자기결정권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는 판결 이후에도 육체적인 생존을 위한 방안을 강구할 수 있었으며, 크리톤이 옥중에서 소크라테스에게 제시한 방법을 따를 경우, 자신이 앞으로 치러야 하는 비육체적인 대가를 차치하고서라도 생존의 길을 선택할 수 있는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실제로 작품을 관통하는 두 가지 선택의 갈래는 육체적 죽음을 통한 가치와 신념의 수호’, 그리고 육체의 생존과 가치와 신념, 행동 기준의 배반으로 나타나며 이 두 가지 선택지는 양립 불가능한 것으로 여겨집니다. 다시 말해 육체적 죽음을 선택한다면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수호할 수 있지만 육체의 생존을 선택한다면 더 이상 가치와 신념을 수호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고 소크라테스는 이처럼 주어진 선택의 기회에서 육체적 죽음을 선택함으로써 앞서 해설한 자신의 가치 기준과 원칙을 지키는 방향을 선택한 것입니다.

작품 안에서 소크라테스는 죽음에 앞서 초연한 태도를 보이기도 하고 죽음에 큰 의미를 두지 않고 있는 것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이러한 소크라테스의 태도는 자신의 가치 기준과 행동 기준, 그리고 신념이 신체적인 조건에 구속되지 않고 더 높은 층위에서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드러냅니다. 요컨대 조건과 가치의 우선순위를 고려할 때, 소크라테스가 처한 상황에서는 자신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육체적인 죽음은 반드시 전제되어야 하며, 따라서 자살이라는 방식은 소크라테스에게는 필수불가결한 선택지였던 것입니다.

이처럼 소크라테스가 선택한 죽음 방식은 이른바 자살행위라는 말로 표현할 수 있습니다. 자살행위는 일차적으로 행위자가 스스로를 파멸에 이끄는 행위라는 의미를 갖지만 상황과 맥락과 결부되어 행위자의 가치와 기준, 또는 결연한 의지를 표명하거나 수호하기 위해 육체적인 제약이나 고통을 불사하는 상황을 묘사하기 위해 사용되기도 합니다. 예컨대 식산은행에 폭탄을 투척한 나석주나 12척의 전선으로 133척의 함대를 막으려고 했던 이순신 장군의 전투는 모두 육체를 초월하여 존재하는 가치를 수호하기 위한 자살행위임에 다름 아닙니다. 이처럼 분명한 목적적 가치를 설정하고 그 목적을 위해 제 자신을 기꺼이 투신하는 자살행위에서는 물리적으로 위해를 가하거나 죽음을 부여하는 존재의 의미는 희석됩니다. 다만 행위자의 가치와 의지만이 남을 따름입니다.

소크라테스의 죽음은 표면적으로는 타인이 가한 위해에 기인한 것이지만 소크라테스의 죽음을 단순하게 타살로 해석하는 것은 소크라테스의 죽음이 갖는 함의를 단편적으로 해석한 것에 불과합니다. 소크라테스는 죽음이라는 벽 앞에서 자신이 선택한 길이 자살행위라는 것을 자각했지만 자신의 가치와 신념을 지키는 길을 의지적으로 선택했습니다. 따라서 소크라테스는 비록 타인의 손에 죽임을 당했지만 이러한 죽음은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선택한 길로서, 소크라테스의 의지의 발로이자 신념의 수호를 위한 결연한 의지의 표명이었다는 점에서 타인의 존재는 희석되고 주체인 소크라테스만이 남아 소크라테스가 스스로 죽음을 선택했다는 해석을 가능하게 합니다.

4. 맺으며



소크라테스는 비록 죽음을 극복하지는 못했으나 역설적으로 죽음을 통해 비로소 육체적 한계를 극복하고 가치와 신념을 수호할 수 있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경직된 행동 원칙과 선민적인 사고에 대한 비판적인 논의는 차치하고서라도 죽음을 불사하면서까지 자신의 신념과 가치를 수호하려고 했던 소크라테스의 노력은 수천 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도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합니다.

민주정체는 그 자체로 최선의 정치 체제일 수 없습니다. 민주정체는 오로지 민주정체의 맹점을 극복하기 위한 끊임없는 노력이 수반될 때 차선의 정체가 될 수 있습니다. 소크라테스의 이야기를 반면교사로 삼아 민주주의의 기능에 대해 숙고하는 기회를 갖고, 민주정체의 맹점을 개진하기 위한 노력을 게을리하지 말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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